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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운명추단(運命推斷)

원세개(위안스카이) 사주

by Dante. A.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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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개(1859. 9. 16. ~ 1916. 6. 6.)는 청나라 말기에 무장이면서 군벌입니다. 다른 것보다도 그는 청나라를 무너뜨린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고, 근대 중국 속에서 격동의 인생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중국식 발음인 위안스카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원세개의 사주는 1859. 9. 16. 미시에 출생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원세개(1859. 9. 16. 미시생 추정)

 
한편, 이전의 푸이의 사주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원세개의 사주 역시도 상당히 조열한 편입니다. 일간 정화(丁火)는 미토(未土)와 사화(巳火)와 같이 강력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월주인 계유(癸酉)를 년주, 일주, 시주의 화토 세력이 전체적으로 포위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를 맹파명리에서는 적신포신(賊神捕神)의 구조라고 부르는데, 사주 그릇이 큰 인물로 평가받게 됩니다. 
 
그런 원세개에게 계유(癸酉)는 원국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자입니다. 천을귀인인 재성인 유금(酉金)이 그 위에 칠살인 계수(癸水)를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칠살(편관)을 쓰고 있으니, 무관직이 잘 어울립니다. 이를 기토(己土)로 제어하고 있는 바, 식상제살 하여 계수를 제어하여 편관으로 쓰게 됩니다. 식상제살은 요령이나 처세가 좋은 사람입니다. 위안스카이는 정치력이 뛰어난 당대 대표적인 정치군인이었습니다.
 
원세개는 어린 시절에 숙부의 양자로 들어가서 자랐는데, 공부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시험에 곧잘 떨어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실제 역사속에 인물로 먼저 등장한 것은 1882년 임오(壬午)년의 시기입니다. 당시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발생하였고, 원세개는 이홍장의 수하로 참전하여 이를 진압하는 성과를 거두고 약 10년간 조선에서 활동합니다.
 
그는 이홍장의 수하에서 꾸준히 활동하였고 1902년 임인(壬寅)년에는 총독의 직위를 받게 됩니다. 당시 외국인과 내국인, 만주족과 한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꾸준히 인기를 모아왔습니다. 그러다가 1908년부터 1910년까지는 황제에 오른 푸이와 아버지인 순친왕의 견제 속에서 재야로 향하게 됩니다만, 다시 1911년 신해(辛亥)년에 혁명이 터지면서 다시 갑작스러운 출세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12년 임자(壬子)년에 대총통의 자리에 오릅니다. 수운에서 출세하는 전형적인 사주이며, 해수(亥水) 천을귀인의 위력을 크게 실감하게 되네요.
 
이후 1915년 말에는 황제로 추대되기도 하였으나, 이는 짧은 순간의 꿈이었습니다. 바로 1916년에는 바로 외국은 지지를 철회하였으며 민심은 등을 돌려서 스스로 퇴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병진(丙辰)년, 수기운이 소멸하며 자신의 권력도 사라지고 신금(辛金) 재성의 입묘로 자신 스스로도 사망에 이르는 모습입니다.
 
사실 원세개는 자신의 지위와 의전을 중시하였고, 욕심이 많은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는 하락이수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가을생임에도 천수가 지나치게 강한데, 이는 지나친 욕심과 명예욕, 불같은 성격 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후천운에서는 원기와 화공을 갖추었고, 효사 자체는 계승자의 역할에 가까운 사람으로 읽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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